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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우연이 만들어낸 신화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는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치르는 고난 주간 의식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다윗의 참회시를 바탕으로 만든 이 곡은 시스티나 예배당 밖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교황이 악보의 반출을 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듣기 위해 로마를 찾았다.   멘델스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1831년, 그는 시스티나 예배당을 찾아 ‘미제레레 메이’를 들었다. 하지만 당시 그가 들은 것은 알레그리의 원곡을 4도 높여 부르는 것이었다. 이 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보이 소프라노가 청아한 목소리로 하늘 높이 ‘하이 C’를 부르는 대목이다. 마치 하늘에서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이 효과 역시 원곡을 4도 높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노래의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4도 높게 연주했는데, ‘우연히’ 멘델스존이 그것을 들은 것이다. 멘델스존은 자기가 들은 것을 그대로 악보에 옮겨 적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880년, 글로브 음악사전이 발간되었다. 이 사전의 ‘미제레레 메이’를 소개하는 항목에 곡 설명과 함께 악보가 실렸는데, 중간에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멘델스존의 악보, 즉 원곡보다 4도 높은 악보가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이 악보는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재생산되었다.   누군가 ‘우연히’ 4도 높여 노래했고, 그걸 ‘우연히’ 멘델스존이 들었으며, 음악사전의 편집자가 ‘우연히’ 이것을 오리지널 악보에 집어넣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몇 개의 ‘우연’이 모여 오늘날의 ‘미제레레 메이’가 되었다. 오리지널 악보가 어떤 것이었든, 우리는 멘델스존의 ‘하이 C’를 들으며 영혼에 충만한 희열을 느낀다. 그리하여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는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우연이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우연 신화 미제레레 메이 오리지널 악보 시스티나 예배당

2024-09-16

[J네트워크] ‘좀비’ 학교의 합창곡

 좀비로 폐허가 된 ‘효산 고등학교’에서 이 합창 음악은 좀 낯설었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1582~1652)가 작곡한 ‘미제레레(Miserere)’다. 조금 긴 원래 제목은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넷플릭스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7화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다. 생존자들이 수많은 좀비를 음악실로 유인하고 뒷문으로 탈출하려고 틀었던 노래다. 피범벅이 된 음악실에 참으로 대조적이었고 그래서 적절했던 음악이다.   거의 400년 전 이 음악이 울렸던 곳은 로마의 시스티나 대성당. 라파엘로, 보티첼리,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경이로운 그림으로 둘러싸인 이 성당에서만 연주될 수 있었다. 교황은 이 곡의 단 한 페이지도 교회 밖으로 나갈 수 없게 금했고 규칙을 어기면 파문했다. 작곡가 알레그리가 교황청 소속이었고, ‘미제레레’는 음악이기 이전에 예배 의식이었으며 교회에서 해야만 하는 기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그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교황의 독점욕을 해석하곤 한다.   죽음과 비극으로 뒤덮인 고등학교에서 울려 퍼진 소절은 ‘미제레레’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높은 ‘도(C)’ 음의 부분이었다. 솔로 소프라노는 높으면서도 마음을 찌르는 듯한 이 음을 부른다. 무엇보다 17세기의 음악 어법에 맞도록 거의 아무 기교 없이 부르는 점이 중요하다.   드라마에서 나온 부분의 라틴어 가사를 번역하면 이렇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다.’ 시편 51편 중 한 구절로,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신의 용서를 처절히 구하는 내용이다.   ‘미제레레’는 별다른 장치가 없어서 아름답다. 장엄한 오르간 반주도 없고, 복잡한 멜로디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9개의 서로 다른 성부로 된 사람의 목소리가 각각 오르내리며 교차하거나 분리된다. 인간의 소박한 목소리일 뿐인데도 ‘미제레레’는 특별하게 강한 힘을 가진다. 17세기 이 곡이 부활절 직전 성 금요일에 연주될 때는 곡에 맞춰 촛불을 하나씩 껐다. 나지막한 합창에 따라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면서 인간은 죄를 진심으로 고백하게 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가장 비극적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골랐다. 2020년 12월에도 비슷한 선택이 있었는데, 바로 넷플릭스 ‘스위트홈’이 오프닝 음악으로 쓴 모차르트 레퀴엠이었다. 여기에서도 죽은 후 신의 심판 앞에 선 인간이 용서와 구원을 간절히 구한다. 수백 년 전부터 절실히 자비를 요청해왔던 인간들의 음악이 인기 드라마에 잇따라  쓰이고 있다. 종교와 상관없이, 어디엔가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절이다. 김호정 / 한국 중앙일보 기자J네트워크 합창곡 좀비 효산 고등학교 미제레레 메이 합창 음악

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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